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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초심을 찾다

by 보이는 성경 2021. 3. 15.

저는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제일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응답하라 1988’(응팔)입니다. ‘응팔’을 만든 감독과 작가가 다시 뭉쳐 제작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 인터넷으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고 있습니다. (선교사가 사역은 안하고 드라마나 본다고 시험에 드는 사람이 부디 없기를...)

3회를 보다가 노련한 외과 의사인 채송화가 수술을 마친 후, 레지던트에게 했던 묵직한 대사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 이 일이 힘들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하지만 익숙해질 게 따로 있지.

우리 일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수술을 하거나 환자를 대할 때 긴장 놓지 말라고.

내가 1년에 200번 이상 수술을 하지만

이게 익숙해져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

선교지에서 십 수 년 살다보니 정말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사는 아이들을 수도 없이 만납니다. 처음에는 마음 아프고 가슴이 먹먹하고 도와주지 못하는 내 능력이 서글펐는데, 너무 오래 그리고 너무 많이 만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익숙’해져갑니다. 가슴이 굳어가고 무덤덤해집니다. 변화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여름이 되면 한 달 정도 한국에 들어가 후원교회를 방문하며 선교보고를 하게 됩니다. 목회자라면 매번 같은 설교를 할 수 없겠지만, 선교사는 매번 다른 교회이기에 같은 내용의 선교보고를 반복해도 괜찮은 특권(?)이 있습니다. 그렇게 몇 교회를 다니다 보면 긴장감은 사라지고 설교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정현종 시인이 쓴 ‘방문객’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목사인 우리는 설교를 일 년에 몇 번 할까요? 주일예배 수요예배에 새벽기도까지... 그게 벌써 몇 십 년이니 수 천 번은 되겠지요? 이제는 많이 익숙해질 때이지요. 오히려 익숙하지 않으면 안 될 나이지요. 그래도 채송화 의사의 말처럼 ‘익숙해질 게 따로 있지. 우리 일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라는 말을 되새기었으면 합니다.

설교는 영혼을 고치는 수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설교를 들으러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한 영혼을 살릴 수도 있는 소중한 수술을 ‘익숙함’ 때문에 부디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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